중국이 쏘아올린 노광기 국산화, 반도체 판도는 바뀔까
중국이 쏘아올린 노광기 국산화, 반도체 판도는 바뀔까
ASML 주가를 흔든 하루
2026년 7월 27일, 반도체 업계에 작지만 상징적인 뉴스 하나가 떴다. 상하이에 본사를 둔 한 중국 국영 지원 기업이 자체 개발한 액침식(이머전) DUV 노광 장비 생산에 들어갔고, 연내 SMIC·화훙반도체·CXMT 같은 중국 주요 반도체사에 공급하기로 했다는 소식이다. 이 보도가 나오자마자 세계 노광 장비 시장을 사실상 독점해온 네덜란드 ASML 주가는 하루 만에 6~8%대 급락했다.
숫자만 보면 사실 대단한 규모는 아니다. 올해 생산 목표는 고작 5대, 내년에도 20대 수준이다. ASML이 작년 한 해 공급한 액침식 DUV 장비만 131대였던 것과 비교하면 아직 걸음마 단계다. 그런데도 시장이 이렇게 민감하게 반응한 이유가 있다.
DUV가 뭐길래, EUV는 아니고?
노광기(리소그래피 장비)는 웨이퍼 위에 빛으로 회로 패턴을 새기는, 반도체 공정에서 가장 핵심적인 설비다. 이 중 EUV(극자외선)는 7나노 이하 최첨단 공정에 필수인데, 미국이 2019년부터 중국 수출을 아예 막아버렸다. 그래서 중국이 눈을 돌린 게 한 단계 아래인 DUV(심자외선), 그중에서도 물을 렌즈처럼 활용해 해상도를 높인 '액침식(immersion)' DUV다.
액침식 DUV는 한 번의 노광으로 28나노 공정까지 커버할 수 있고, 여러 번 반복해서 패턴을 새기는 '멀티패터닝' 기법을 쓰면 7나노급까지도 만들어낼 수 있다. 다만 멀티패터닝은 공정이 복잡해지는 만큼 수율이 떨어지고 원가가 올라간다는 단점이 있다. 미국은 2023년부터 이 액침식 DUV 장비의 중국 수출마저 막았고, 그래서 중국은 2019년부터 7년째 국산화에 매달려왔다.
그래서 ASML을 따라잡은 걸까
결론부터 말하면 아직 멀었다. 이번에 생산을 시작한 중국산 장비는 처리 속도와 신뢰성 면에서 ASML 최신 제품에 한참 못 미친다는 평가다. ASML의 최신 DUV 장비가 하루 6,000장 넘는 웨이퍼를 처리하는 반면, 중국산은 아직 양산 라인 투입 전 추가 검증이 필요한 수준이고 부품 공급 지연으로 생산 속도도 예상보다 늦춰지고 있다고 한다.
그럼에도 이번 소식이 의미 있는 건 '0에서 1로' 넘어갔다는 사실 자체다. 수입 장비와 해외 유지보수 서비스에 전적으로 의존하던 구조에서, 비록 저성능이라도 국산 대체재를 확보했다는 건 장기적으로 협상력과 공급망 안정성 측면에서 무시할 수 없는 진전이다. 참고로 중국은 EUV 장비도 별도로 개발 중인데, 이쪽은 아직 시제품 단계이고 업계에서는 실제 양산 투입 시점을 정부 목표인 2028년보다는 2030년 즈음으로 보는 시각이 많다.
투자자 시선에서 본 함의
개인적으로 이 뉴스를 보면서 눈여겨본 포인트는 세 가지다.
첫째, ASML의 중국 매출 구조. 최첨단 장비 판매는 막혔어도, 중국은 여전히 ASML 매출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큰 시장이다. 지금 당장은 저가형 DUV 판매로 버티고 있는데, 국산화가 진전될수록 이 저가 라인마저 잠식당할 여지가 생긴다는 게 시장이 민감하게 반응한 배경이다.
둘째, 중국 반도체 굴기의 타이밍. 공교롭게도 이번 소식은 중국 최대 D램 업체 CXMT가 상장 첫날 본토 시총 1위에 오른 직후 나왔다. 국산 노광기 소식과 CXMT 상장 흥행이 겹치면서 중국 반도체 산업 전반에 대한 자신감이 부각되는 모습인데, 이게 단기 이벤트인지 추세적 흐름인지는 조금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셋째, 공급망 리스크 재평가. 미국의 대중 수출 통제가 오히려 중국의 자체 기술 개발을 가속시키는 촉매가 됐다는 해석도 나온다. 규제로 시간은 벌었지만 중국의 기술 추격 속도 자체를 막지는 못했다는 점에서, 반도체 장비·소재 밸류체인 전반의 지정학적 리스크를 다시 짚어볼 만한 시점이다.
정리하며
이번 중국 DUV 국산화는 'ASML 독점 붕괴'라기보다는 '균열의 시작'에 가깝다. 성능 격차는 여전히 크고 생산량도 미미하지만, 7년간 이어온 자립 노력이 실제 양산 공급이라는 결실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상징성이 크다. 관건은 이 국산 장비가 실제 반도체 생산라인에서 얼마나 안정적으로 돌아가는지, 그리고 EUV 국산화가 언제쯤 시제품 단계를 벗어나는지가 될 것 같다.